자유 게시판
(미성년 출입금지)휴일 밤에 끄적끄적... |
번호
594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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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tar0524 |
2005-07-31
| 조회
3572
|
(술김에 쓴 글이라 내일이면 없어질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그녀를 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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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에 썼던 글을 돌이켜본다.
그때의 결심을 실행에 옮기기 여러번...
수도 없이 지워졌던 전화번호...
그때마다 왜 차마 돌아서지 못하고... 이제서야 상처받아 이렇게 열병을 앓는 것일까.
잊자...
그저 설레임에 그쳐야 했던 것을...
처음부터 잘못 들어선 길이었다...
빨리 장가나 가야겠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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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오늘 이런 글을 끄적이는지 알 수 없다...
마음의 폭풍은 언젠가 잦아들겠지만...
이렇게라도 내뱉지 않으면 안될 것만 같다.
가을 타나보다.
P.S.
미성년자는 가급적 이 글을 읽지 말 것이며, 혹여 읽고 이해가 잘 안되더라도 부모님께 질문은 하지 말기 바란다.
잘못하면 맞는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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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된 번호를 지우시겠습니까?"
"꾹"
그렇게 그녀를 지웠다.
그것은 꼬박 12년만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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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의 가을, 우연히 수업시간에 옆 좌석에 앉았던 그녀.
쑥맥같은 녀석이 무슨 용기였을까...
커피 한잔 하자는 말을 어케 꺼냈는지 지금도 신기하다...
법과대학 자판기로부터 꺼낸 커피 한잔을 마시고 강의실에 들어갔을 때...
교수님은 이미 강단에 서 계셨고, 강의실의 전 학생들이 우리를 쳐다보았다.
그로부터 긴 인내와 기다림의 시간은 시작되었고...
1년하고도 며칠이 더 지난 날...
이제 그 기다림에의 에너지도 모두 소진되고...
어느 날 그녀를 신림동 학원 앞에서 보고도 그냥 의례적인 인사로 지나쳐버린 그날...
그로부터 1주일이 지나고 우리는 이른바 C.C.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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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하하하하하!! 이게 모야?"
"어... 데이트 계획표!-_- 그중에 하나만 골라봐.(__*"
"야! 너 여자랑 데이트할 때 마다 이 짓 하냐?"
"그, 그런 거 아냐!-_-;"
"너 생긴 거랑 다르다 야... 푸하하하!"
그렇게 내민 3장의 데이트 코스. 밤새도록 작성한 그 계획표.
여자랑 데이트를 한번도 해 보-지 못한 나는 그냥 알아서 리드를 해야 하는 줄 몰랐던거다.
롯데월드에 가서 신난다며
혼자서 고공파도타기를 3번이나 탔던 그녀.
(그때만 해도 난 무서워서 못탔다 -_-;;;)
분위기 있는 경치를 항상 좋아하던 그녀.
피곤한 몸이지만 휴일이면 교외로 나가고파하던 그녀.
한군데서 노닥거리는 것을 좋아하던 나를 백화점으로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아이쇼핑을 즐기던 그녀.
솔직하고 거침없는 성격의 그녀.
"너 첫키스 해봤어? 언제? 누구랑? 어디서?"
"...... -_-; 말 안햇!"
난 그때까지 아무것도 모르는 쑥맥이었다.
"그...그..럼 넌!"
사실 나는 알고 있었다.
그녀가 내게 오기까지 기다린 1년...
그 1년 동안에도 그녀가 남자친구를 3명이나 바꾸었다는 것도...
그녀는 쑥스럽게 웃고 말았다.
우린 그날 나이트클럽에 갔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이었지...
그녀의 춤은 너무도 도발적이었고...
자리에 앉아 내 옆에 바싹 붙어앉은 그녀...
순진해서였을까...
그녀의 손길이 내 허벅지를 쓰다듬고 있었음에도
이 바보같은 녀석은 터질 듯한 가슴의 두근거림에 감히 다른 생각을 먹을 생각조차 못했다.
(지금이라면... 당연히 같이 늑대모드로... -_-;;;)
"그럼 너 마지막 키스는 누구랑 언제 어디서 해봤어?"
"......-_-; 말안햇!"
말 대신 메모지에 써서 조그맣게 접었다.
"이거 나중에 집에 가서 본다고 약속하면 줄게."
"왜? 지금 보면 안돼? 혹시 딴 여자랑 어제 한 거 아냐?"
"-_-; 그런 거 아냐!!"
"푸하하하하! 소심하긴 알아써!"
시끄러운 음악 속에 웃어대는 그녀.
옆 테이블의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았지만 그래도 행복했다.
새벽 3시가 다 돼서야 그녀의 기숙사 앞에 도착했다.
재미있었다는 의례적인 인사를 하는 그녀도,
그리고 나도 그 어색함 뒤에 남겨진 미련과 여운을 어쩌지 못했다.
잘가란 인사를 남기고 막 1층으로 들어서는 그녀의 어깨를 잡고선 그녀의 입술을 훔쳐버렸다.
허공에서 허우적대던 그녀의 손이 한참이 지나서야 떨리듯 내 어깨에 와닿았다.
긴 침묵이 흐르고 그녀가 말없이 돌아섰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입가에 묻은 그녀의 립스틱을 머금으며
지금쯤 방안에 쪼그려 내가 건넨 메모지를 펼쳐 보고 있을 그녀를 떠올렸다.
'1992년 가을 어느날 새벽 너의 방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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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방이 되게 낡았다. 그치? 저기... 먼저 씻을래?"
"어... 아니 난 괜찮아."
바지를 무릎 근처까지 걷어올리고 욕실로 들어 갔다.
일회용 칫솔로 양치를 하고 얼굴과 손, 발을 씻고 욕실을 나왔다.
방바닥에 앉아 있던 그애는 수건을 손에 들고,
내가 나온 욕실안으로 말없이 사라졌다.
TV를 켜고 대충 채널을 돌려 맞춘 후에
방 한쪽 구석에 등을 기댄 채 화면에 시선을 고정 시켰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욕실 문을 열고 그애가 나왔다.
"물이 좀 차갑다. 그치?"
"응."
"TV 볼래?"
"..."
"하... 하긴 피곤하겠다. 잘래?"
"으응."
한쪽 구석에 세워진 작은 장농문을 열고
안에 들어있던 이불을 꺼내 방바닥에 폈다.
베개 2개, 덮는 이불 두개, 바닥에 까는 이불 한개.
말없이 바닥에 등을 대고 이불을 턱 아래까지 끌어 당겼다.
입안에 침이 가득 고였지만 혹시나 소리가 들릴세라 삼키지도 못하고 입안에 고인 채로 참았다.
"자니?"
"아니..."
"내일 일찍 가자. 피곤할텐데 자..."
"응."
2년이 지난 후...
당시 그녀는 여전히 가난한 고시생이었고...
나는 500,000원밖에 안되는 박봉이었지만 그나마 월급을 받으며
실무수습과정의 일환으로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직무대리로 근무하고 있었다.
지금은 무너져 흔적조차 없어진 삼풍백화점 앞에서 우리는 만났다.
나는 집에 기습단속 때문에 못들어간다고 거짓말하고 난생 처음 외박을 했다...
방이 없어 이곳저곳을 떠돌다가...
간신히 신림동의 한 여관방을 호텔 가격에야 잡을 수 있었다...
결국 참지 못하고 침을 삼키고 말았다.
"꿀꺽..."
마치 천둥소리처럼 크게 울려 퍼졌다.
한참이 흘렀다.
"안 자고 있었구나."
"응"
"무슨 생각해?"
"..."
"무슨 생각하는데?"
"어..그..그냥"
"말해봐."
"어... 니 생각."
"나? 무슨 생각?"
"..."
"말해봐 응?"
"아까 까페에서 막 웃었을 때... 그런 생각이 들더라. 너 참 이쁘다는..."
"부탁 하나 해도 돼?"
"응?"
"... 키....스.... 해줄래?"
"................"
이불을 아래로 걷어 내리고 무릎을 끓고 자리에 앉았다.
창문 틈으로 비쳐드는 흐미한 불빛을 따라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은 그애의 입술에 가만히 입술을 포개었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다시 자리에 누운 후에
이불을 턱까지 당겨 덮은 후에 그녀 쪽으로 비스듬히 몸을 뉘었다.
그날 난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여자와 잠을 잤다.
한번의 입맞춤과 잠결에 있었을 몇번의 살스침.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평소에 비웃던 [소나기]에 나오는 소년과 [별]에 나오는 목동이 되어 있었다.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몇 시간을 조용히 응시하던 나도 어느순간 스르르 잠에 빠져들어 있었고...
그것은 1994년 크리스마스 이브에 있었던 일이었다.
결국 2년 후 그녀도 시험에 합격해서 변호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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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해가 흘러 가을...
일상에 지루해져서였을까... 사소한 다툼이 있었다.
아니, 사소하다는 것은 나만의 생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전부터 그녀가 하고 싶은대로 따라 주기만 하는 내 태도에 대한 불만들...
"오늘은 뭐 하고 놀까? ^^"
"넌 하고 싶은것 없어? -_-+"
그것을 난 사소하게 넘겨버렸던 것 같다.
1999년 11월의 어느날...
거제도에 현장검증을 간 그날...
그녀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녀는 내게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와의 연락은 끊어졌다.
그렇게 연락이 끊겨버린 몇 달,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그녀가 회사에서 몇 살 연상의 미국변호사와 사귀고 있다는 것이었다.
헛소문이라고 믿었다.
최근에 가장 친한 친구로부터 구체적인 내용을 듣기까지 난 몇년간을 믿지 않아 왔었다.
아무도 상세한 것은 이야기해 준 사람이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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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술 마시고 방황하던 몇년...
낮에는 근엄한 사람으로,
밤에는 증권회사 직원, 치과의사 등 그때그때 다른 직업을 대가며 술집과 나이트클럽을 전전했다.
어느 순간 수줍고 얌전한 모범생의 교범 같았던 내 모습은
내가 경멸하기 그지않았던 압구정동의 그들을 닮아가고 있었다.
심지어는 One Night Stand까지 일삼던 나...
영화를 보고 술을 같이 마셔줄 여자들은 많았고...
나름대로 사귄다고 할 만큼의 관계도 두명 정도 있었지만...
마음을 주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나는 학생이 아니기에, 내가 사회적 지위를 가졌기에 그랬다고 생각했었다.
내 스스로 마음을 함부로 주어서는 안되기에 그랬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또다시 상처받거나 상대에게 상처를 주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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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년하고도 몇달이 더 지난 2002년 초...
"오랜만이네. 잘 지내지?"
"어. 오랜만이네. 너두 잘 지내지?"
"애인두 잘 지내구?"
"애인? 푸하하하하 나 애인 없어 --;"
"그 웃음소린 여전하네. 나일 먹어간다는 게 가끔은 좋다는 생각을 해."
"너 결혼 안하냐? 니가 안하니까 내가 미안해 죽겠다."
"-_-; 너만한 여자가 없더라고..."
"당연하지... 눈좀 낮춰라..."
"뜨끔 --; 어..어...그게 말이지..."
나는 역공을 날렸다.
"그러는 너는 왜 안해?"
"난 혼자 살꺼야..."
그 말을 하는 순간 그녀의 눈에 언뜻 스치는 수심...
다른 사람이라면 몰랐겠지만, 7년간 거의 매일같이 보아왔던 내 눈은 속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밝고 환했다.
우리는 다시 함께 술을 마셨다.
나만 술을 마신 것일까...
"오늘 옆에 있어줘..."
8년 전의 그때와 같았다...
왜 그랬을까...
당시에 내가 독립해 있었기 때문에 장소는 내가 살던 아파트였다는 것만 달라졌을 뿐...
아니, 달라진 것은 많았던 것 같다.
우리의 술 마시는 장소도 학교 앞의 허름한 카페에서 호텔 바로 바뀌었으니까...
그때는 내가 그녀의 얼굴을 쓰다듬어 주었지만,
이번에는 그녀가 내 얼굴을 쓰다듬으며 내가 잠에 빠져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쥐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
잠겨 있지 않은 현관문이 어제의 일이 꿈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곧 그녀는 미국으로 공부하러 떠났고,
나는 지방발령으로 영동에 내려왔다.
생면부지의 땅.
낯선 곳에서 그녀는 많이 힘들었던 모양이다.
메신저로 가끔 연락하면서,
그전에 그녀에게서 볼 수 있었던 생활에 대한 욕심이 많이 사라진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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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가을, 귀국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만나자고 전화를 했다. 싫다고 한다.
"나 너 만날때마다 힘들었어... 이제 이러지 말자."
그랬다.
그녀는 힘들면서도 쾌활함을 가장하여
아무런 일 없었던 것처럼 나를 만나주었었던 것이다.
그날 기억속에서 마지막 그녀를 떠나 보냈다.
이제 우린 같은 하늘 아래서 서로 다른 모습으로 살아갈 것이다.
그녀는 외국통상 전문이어서 법정 출입을 하지 않으니
살아있는 동안 우린 다시 만날 일이 없을 것이다.
1년 반만에 그녀의 목소릴 들었는데...
만약 연락이 되지 않았다면,
어쩌면 난 평생 그 번호를 지우지 못한 채 가슴에 묻고 살아가야 했을지도 모른다.
다른 여자들과 이런저런 만남을 가지면서도,
내 기억속에 그녀는 늘 나의 몫으로 남아있었나보다.
그녀의 전화번호를 지웠다.
더불어 메신저에서도 그녀의 주소가 없어졌다.
그리고... 나는 술을 끊었다.
올초 그녀가 법원에 지원했다가 거절된 후
전 법무부장관 강모 변호사가 대표로 있던 법인으로 옮겼다는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그녀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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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드디어 선을 보기 시작했지만,
그것은 그동안 해오던 1회성 만남의 성격만 달라졌을 뿐,
그전과 마찬가지로 하릴없이 그 횟수만을 더해 갈 뿐이었다.
약 2개월 전에 대전에 나갔다가 우연히 한 여자를 알게 되었다.
지인과 만나는 자리에서 인사만 한 정도였으니, 특별히 기억에 두지 않고 있었다.
나보다 10살 이상 어리니 꼬맹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땐 그저 스쳐지나간 그녀를 20일 전에 대전에 나갔다가 다시 마주쳤다.
"커피 한잔 할래?"
"술 한잔 사주세요."
당돌하고 밝고 환한 그녀.
그녀와 술을 함께 마신 것은 잘못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헤어지며 그녀의 전화번호를 받았다.
2주가 다시 지났다.
주말도 아닌 평일 저녁.
무엇인지 모를 분위기에 휩싸여
나도 모르게 택시를 잡아타고 대전으로 나가 그녀를 불러냈다.
이젠 12년 전과 달리 여자 앞에서 우물쭈물하던 나는 아니지만,
내 마음만큼은 12년 전의 그것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결국 6일 동안 무려 4번이나 저녁마다 대전으로 나갔다.
그리고 어제 토요일...
차를 가지고 간 나는 그녀를 만나기 전에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함께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시고...
다른 날과 반대로, 이번에는 그녀가 나를 데려다주었다.
호텔방이란 곳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다며 구경만 한다던 그녀는 들어오자마자 쓰러져 버렸다. -_-;;;
생각외의 사태에 당황스러웠지만, 다행히 그녀는 2시간 후에 눈을 떠 집으로 갔다.
그 2시간...
술에 취했음에도 잠이 오지 않았다.
가만히 그녀의 머릿결을 쓰다듬어 보았다.
이제 두번 다시 소년이나 목동이 되리라고 생각조차 못했었는데...
쓸쓸한 방안에서 뜬눈으로 밤을 샜다.
동이 트는 창밖을 내다보던 중...
어느 순간 스르르 잠이 들었고,
일어나니 벌써 10시였다.
아침에 호텔로 데리러 오겠다던 그녀는 어제의 일이 쑥스러웠는지 오지 않았다.
전화하지 않았다.
"정말 고마워. 주말 잘 보내."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가만히 핸드폰의 배터리를 빼내었다.
얼마만일지 모를 설레임이지만,
정말 어리디 어린 그녀는 내 인연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동안 잘못 알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내가 마음을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한 것이 아니었다.
만날 때 늘 이별의 순간을 떠올려보는 나쁜 버릇.
상처받을까 두려워 한발 전진하다가도 조그만 돌부리에도 쉽사리 포기했을 뿐이다.
돌이켜보면 그동안 전혀 설레임이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상대방이 단 한 차례만 난감한 표정을 지어도 나는 물러서고 말았었다.
친구들이 내 달라진 모습을 보며 선수라고 놀려대는 중에도
난 단지 소심한 사람에 불과했었다.
그저 상처받고 싶지 않은 이기심이었을지도 모른다.
사랑이 끝나서 이별을 하는 게 아닌가 보다.
이별한 후에도 사랑은 또 다른 모습으로 계속되고 있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시작은 있으되 끝은 알수 없는 사랑...
영동으로 오는 고속도로 위에서...
왜 가슴이 시리고 눈에 눈물이 고이는지 알 수 없었다.
집에 도착해서 핸드폰 배터리를 다시 끼웠다.
그리고... 그녀의 전화번호를 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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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가 한 침대에서 잘 수 있다는 것과
한 침대에서 섹-스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르다.
한 침대에서 잔다는 것은
섹-스만 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한 침대에서 밤에 같이 잠이 든다는 것은
그 사람의 코 고는 소리, 이불을 내젓는 습성,
이가는 소리, 입에서 나는 단내 등,
그런 것들을 전부 이해한다는 것 말고도
그런 모습마져 사랑스럽게 볼 수 있다는 뜻이다.
화장 안한 맨 얼굴을 예쁘게 볼 수 있다는 뜻이며
로션 안바른 얼굴을 볼 수 있다는 뜻이다.
또한 팔베게에 묻혀 눈을 떴을 때
아침의 당신의 모습은 볼만하리라.
눈꼽이 끼고, 머리는 떴으며, 침 흘린 자국이 있을 것이다.
또한, 입에서는 단내가 날 것이고,
그 모습을 바라보며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은
단내나는 입에 키스를 하고, 눈꼽을 손으로 떼어주며
떠 있는 까치집의 머리를 손으로 빗겨줄 수 있다는 뜻이다.
당신이 함께 그와 또는 그녀와 잔다.
처음에 당신은 그의 팔베게안에,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자겠지만,
한참 깊은 잠에 빠져들면
당신들은 등을 돌리고 잘 지도 모른다.
왜냐면, 깊은 잠속에서 당신의 잠 버릇은
여지없이 다 나오기 때문이다.
이를 갈기도 하고, 눈을 뜨고 자기도 하며,
배를 벅벅 긁거나, 잠꼬대를 하거나,
잠결에 울 수도 있다는 뜻이다.
당신이 함께 잔다면
아침에 눈을 뜨자 마자,
단내나는 입으로 키스를 할 수 있으며
옷을 충분히 입지 않았다면 바로 섹-스가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런 한 침대에서 잔다는 것은,
매일 같이 잘 수 있다는 것은
서로 매일 같이 섹-스를 하는 사이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가 집이 아닌 곳에서, 애인과 섹-스를 할 때에는
우리는 일단 그와, 그녀와 어떤 합의가 있어야 한다.
사랑한다고 믿는다고.
아니면 충분히 매력적이다라고.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여하튼 잘만한 사람이며
사이라는 것을 서로 합의하에 이루어진다.
몇시에 호텔에 또는 여관에 들어가서 몇시에 나선다는
그런 합의가 있으며
그곳에 가기 전에 상대방의 귀를 만진다든지
엉덩이를 만진다든지, 하고 싶어 라고 말을 한다는지 하는
서로의 확실히 약속된 언어적, 비언어적 합의가 있을 것이다.
그곳에 가면 남자는 계산을 하기 위해 지갑을 열 것이고,
여자는 텔레비젼을 켜며 콘돔을 준비하라고 말을 한다.
둘은 습관에 따라 먼저 목욕탕으로 들어가기도 하며
그냥 침대에서 일부터 벌릴 수도 있다.
그렇게 한바탕의 폭풍이 지나가면
잠시 누워서 편안한 휴식을 취하기도 하며
여자는 눈썹이 지워지지 않았나 화장을 고칠 것이며
남자는 자신이 여자를 만족시켰나 다시 되씨ㅂ어 볼 것이다.
그런 후 다시 한번의 폭풍이 있을 것이다.
시간에 쫓긴다거나 정력이 형편없다면 그렇지 않겠지만
그런 후 다시 목욕탕에 들어가 씻고,
그곳에 발을 디딜 때와 다름없는 모습을 갖추기 위해
여자는 화장을 하고, 머리를 빗으며
남자는 목욕을 하고, 머리를 감을 것이다.
그러면 섹-스뒤에 느낌은 어떨까.
사랑하는 사이라면 그런 최면에 걸렸다면, 좋을 것이고,
여자가 집에 늦었다면 여자는 불안할 것이며
새벽께라면 남자는 더 머무르고 싶을 것이다.
가임기간이라면 둘 중의 하나는 불안할 것이며
나머지 하나는 기쁠 지도 모른다.
불행하다면 둘 다 불안할 것이겠지만...
그들은
항상 꾸민 모습으로 만나며
눈꼽 낀 얼굴을 볼 수 없으며
단내나는 입술에 키스를 할 수 없다.
남자는 여자의 화장 안한 얼굴이
얼마나 큰 상상력을 요하는지 알지 못할 것이며
여자는 남자가 얼마나 씻기 싫어하고 게으르다는 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항상 잘 차려진 모습으로 만나며
섹-스는 그들만의 합의된 축제이다.
그러므로
한 침대에서 잘 수 있다는 것은
한 침대에서 섹-스를 할 수 있단 것과 다르다.
-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中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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