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단편 < 운수 좋은 놈 > |
번호
796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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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성법사 | 정종 | Lv.187 |
2005-12-23
| 조회
2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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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식에서 초반에 술에 전사하여 일찍 들어와 잤더니...
일어나니 새벽이군요... 그냥 붓 가는 대로 끄적거려 봅니다.
단편 < 운수 좋은 놈 >
20XX년 12월 13일 23:50, H아파트 10X동 100X호
으라차차~~~ 한번더참아볼께... 으하하하~~~ 웃으며넘겨볼께...
혼자여서~~~ 좋은일이... 아직도 너무 많은데...
나는법을~~~ 잊어버렸다해도... 내일향해~~~ 걸어가는이길이...
언젠가는~~~ 커다란 날개가 되어줄테니...
얼레? 귀가 이상한가?
요즘 들어 몸이 허약한 느낌이 들더니...
환청이 다 들리네그려...
남들은 그렇게 봐주지 않지만 스스로는 문어발이라고 우기는 E...
관리가 어려워 여자별로 전화벨소리를 다 다르게 해놨다...
(아무리 봐도 역시 게으른 놈이다)
E는 올 연말에 전화가 무섭다.
술 마시자는 남정네들이야...
“바빠 죽겠다”는 일갈로 뻔뻔하게 물리치지만...
여인네들은 어쩌나?
모든 신규의 소개팅 등은 올스톱...
J, L, A, S...
기존의 인원만으로도 주체가 안된다.
최근에 작업(?)하던 C까지도 사소한 말다툼을 계기로 미련없이 과감하게 털어버렸다.
빈손으로 나가기도 힘든 이때...
괜히 만났다가는 선물값도 장난이 아니고...
24일과 31일은 몸을 쪼갤 수 없으니 잠수타야 한다.
어이 거기 방금 피식 웃은 아저씨(아... 학생이라고? 미-_-안하우...), 여자 많은 놈은 좋겠다고?
웃기지 말라...
하나라도 실속있는 놈이 좋은거지...
대충대충표 문어발은 이럴 때 정말 실속없다.
평소와 달리...
날짜별로 스케줄 나누기 필살신공이 통할 상황도 아니고...
망할 비상근무대기 때문에 전화기를 꺼놓을수도 없는 상황이니...
J랑 데이트하고 있는데 L한테 전화오면 맛이 가는거다.
괜히 빠킹나서 다 터질 수도 있는 위험을 감내할 바에는 차라리 감기 걸렸다는 핑계로 사무실 구석에 처박혀 밀린 일이나 하기로 작정한 바이다.
이럴땐 몸이 5개쯤 되면 좋겠다는 쓸데없는 상상을 한다.
한놈은 일하고 나머지는 데이트하러 댕기고...
샐러리맨으로서는 연봉수준 상위클라스에 들어 있고...
이른바 사회에서 말하는 빵빵한 놈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있기는 하지만...
어머님 환갑에다가 여동생 생일, 그리고 1~2월에 걸친 인사이동 때문에 곧 해체될 것으로 예상되는 팀 부하직원들에 대한 연말회식 겸 해단식... 그냥 대충 계산해도 오백은 훌쩍 넘어간다. 엎친데 덮치기로 진퇴양난인 이번 연말... 괜히 여자들 선물 챙기다가는 생계가 위태... 아니 생명까지 위태롭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E였다.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벨소리지만...
전화가 혼자 노래를 부르든 말든 받을 생각을 않는다.
다른 여인네들을 모조리 정리하고 화려한 생활을 내던지면서까지 과감히 대쉬했던 E에게...
엄청 튕기다가 술 한잔 하게 된 계기에 사귈래 사랑해... 등등 별 소리를 다 하다가...
몇 달 전 정말 영화처럼 뒤통수를 쳐버리고는 자기는 그런 이야기 한 기억이 없다고 청문회 증인마냥 오리발을 내밀던 그뇬... K다.
당연히 예전처럼... 안받으면 끊겠지 뭐...
라고 생각한 것은 그의 착각이었다.
1분도 넘은 것 같은데 전화는 계속 으라차차~~~를 내뱉고 있다.
일말의 미련일까...
왜 받아버렸을까...
폴더를 여는 순간 이미 후회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여보세요?”
“왜 이렇게 늦게 받아?”
“......”
방귀 뀐 놈이 성낸다더니...
왜 전화했는지도 모르겠는데...
그냥 아무 일 없었다는 듯한 태도가 더 기분나쁘다.
“그동안 잘 사셨수?”
(반쯤 삐-_-딱한 말투)
“응... 오빠 뭐해?”
뭘 하긴... 야근하고 늦게까지 일하다가 밤 11시에 들어왔더니 계량기 동파돼서 씻지도 못하고... 피같은 생수로 고양이세수와 칫솔질 대충 하고 머리도 못감고 찜찜하게 자려는 중이지...
“응... (여차저차)...해서 자려던 중이오...”
“왜 이리 연락이 없어?”
“응... 좀 바빠서...”
(뛰바야... 이젠 너랑나랑 아무것도 아닌데 뭔상관이여? 아니... 넌 첨부터 암것도 아니었잖아!)
“안바쁘면 얼굴 좀 보자...”
“지금 막 퇴근해서 피곤하다... 씻지도 못했는데... 그리고 지금이 몇시고?”
(거참... 그짓 해놓고 뻔뻔한건지 무딘건지... -_-)
“어차피 물 안나온다며? 술이나 한잔 하삼...”
“택시비가 얼만데... 갔다가 언제 오냐?”
“뭐 하루이틀인가? 그냥 차 가져와... 밖에서 자고 드가셈...”
엄청난 유혹이었다. 그 사건 이후 술을 끊었음을 공언한 그에게 술 얘기를 꺼낸 이놈...
멍청한걸까? 아니면 철면피일까?
진정으로 멍청한 것은 바로 그 자신이었음을 E는 모르고 있었다.
20XX년 12월 13일 08:10, H아파트 10X동 100X호
아침...
갑자기 수돗물이 안나온다.
물탱크 공사 때문에 단수 되는 경우가 종종 있긴 하니...
좀 아깝지만 생수통 열어서 대충 머리에 물만 바르고 드라이해서 붙인다.
얼레? 아파트 공고판에 수도공사한다는 말이 없네?
일말의 불안감이 스치지만...
뭐 설마 별일 있겠어... 공사 맞겠지...
라고 생각하며 그냥 출근길을 재촉한다.
20XX년 12월 13일 22:10, E의 사무실
눈썹을 휘날리며 바쁘게 일하다가도...
가끔 거울 앞에 서서 머리에 흰색이 띄엄띄엄 드러나기 시작하는 자신의 모습을 쳐다보며...
내후년 쯤엔 지금 위에 열거된 여인네들도 다 제갈길을 갈 것이라는 상념에 빠지기도 한다.
그동안 수없는 여자들에게 뒤통수를 맞으며...
이 세상에 순수한 사랑이 어디있냐며...
다 속고 속이는 세상에서 혼자 순진한 건 손해라며...
엄청난 바람기로 재무장하여 다시 태어난 그이지만...
그런만큼 결혼에 대해서만큼은 두려움을 면하지 못한다.
언제쯤 이를 털어버리게 될까...
어쨌거나... 잡생각의 끝은 결국 지금과 같은 야근으로 귀결된다.
수도관 공사가 꽤 오래 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평소보다 더 늦게까지 일하고 있다...
20XX년 12월 13일 23:10 H아파트 10X동 100X호
들어오자마자 수도를 틀어본다.
아침의 불안감이 현실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여전히 수도는 공기조차 내뿜지 않고 있다.
혹시나... 라는 생각에 계량기를 들여다본 E...
쩍 하는 금이 선명하게 새겨진 계량기를 쳐다보며...
입마저 쩍 벌어져버린 E...
내일 아침에도 감지 못한 머리로 출근할 것을 생각하니 끔찍하다는 느낌이 스쳐간 것은 결국 E의 자기합리화에 단초를 제공하고 만 것이었다.
20XX년 12월 14일 03:10, 시내 K주점
K는 이미 취했는지 쉴새없이 떠들고 있다.
요즘 직장 이야기...
주말에 왔다 간 조카 이야기...
묵묵히 듣고 있는 E도 얼큰하니 취기가 올라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래...
애복낙원에 놀러갔을 때...
네 조카 정말 귀여웠지...
식당에서는 두분 딸이냐고 해서 얼굴 붉히기도 했고...
하하...
아 뛰바... 왜 나왔을까... 잠이 몰려온다...
정말 아무 일 없었던 듯 그전보다 더 자연스러운 태도로 조잘거리는 K를 바라보며...
E는 생각에 빠진다.
몇 달 전에 겪은 그 악몽같은 일이 혹여나 그냥 꿈이었나?
아냐... 너무도 생생해...
그날 새벽... M빌라 20X호...
출근길에 갑자기 보고싶어 찾아갔지만...
그 구두...
시켜 먹은 듯한 2인분의 밥그릇...
그리고 동공을 풀리게 했던...
지금까지 수없이 맞아왔던 뒤통수 중 가장 큰 펀치를 맞으며...
여자라는 동물은 믿어서는 아니된다고...
이것은 하느님이 내리는 경고라고...
그 다짐을 더욱더 굳게 하기 위해 그 장면만큼은 평생 잊지 아니하기로 하지 않았던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E는 이 녀석을 다시 만나고 있는 자신이 한심스럽기 그지없다.
갑자기 이놈이랑 함께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뭔가가 치밀어오를 것 같다.
몸을 일으키는 E...
“늦었다. 가자...”
“벌써?”
“벌써는 무슨... 나 내일 일찍 출근해야 돼... 아니 오늘이구만...”
술집 앞 골목에 세워놓은 자신의 차를 내버려두고...
더 마시겠다고 떼쓰는 K를 택시에 태워보낸 후...
바로 옆 건물로 들어가 잠을 청하는 E였다...
20XX년 12월 14일 08:10, 모텔방
으음...
머리가 찌근거린다...
출근해야 해...
후다닥...
무의식 중에서 본능이 몸을 일으킨다.
어? 뭔가 다르네?
아참... 집이 아니로구나...
처먹는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폭주를 반복하던 옛 시절과 달리 이젠 몇 잔 안되는 술도 버거움을 느낀다. 간이 썩어버린 것인지, 아니면 정상인의 몸을 되찾기 위한 과도기적 현상인지는 모르겠지만, 후자라면 그렇게 기분나쁜 일은 아닐 것이다.
욕조에 물을 좔좔 틀어놓고 몸을 담근다...
노곤해옴을 느낀다...
아 졸려... 졸면 안되는데...
20XX년 12월 14일 09:15, K주점 앞
아 뛰바... 이런 X같은 일이...
골목에 세워놓은 차가 없어져 버렸다. -_-
출근해야 하는데... ㅜ.ㅜ
혹시나 싶어 주위를 둘러보는데...
바닥에 뭐가 붙어 있다.
후다닥...
주차위반 고지서!!!!!!!!!!
운좋게도(?) 주차단속차량에 끌려간 것이다.
그제서야 요즘 연말이라 특별단속기간이라는 기사를 본 것이 생각난다.
20XX년 12월 14일 10:00, XX구 견인차 보관소
택시를 잡아타고 어케어케 찾아서 보관소로 간다.
들어가자마자 맨 앞에 서 있는 E의 차...
살다 보니 딱지라는 것도 떼보게 되는구나...
보관료 포함 71,000원... 주차비 한번 된통 비싸게 냈군...
그런데... 흥분을 가라앉히고 마음을 추스른 후 고지서에 찍힌 견인시간을 보니 09:08... OTL;;;
욕조에서 깜박 졸지만 않았어도...
아뛰... 생계도 어려운데... ㅠ.ㅠ
역시 K를 만난 게 잘못이다.
후회하며...
아이쒸 너때문이자나...라고 한바탕 하려고 전화를 한다...
과연 그랬을까?
뭐 처음에야 그랬을지 모른다만...
E... 이놈...
혹시나가 역시나지 뭐...
미안하다며 어차피 늦은거 밥이나 먹고 가라는 말에 쫄래쫄래 K의 자취방으로 향한다.
미-_-친놈 같으니라고... 밥벌레... 식충이... 월급도둑...
천사의 아우성은 악마의 방음벽에 막혀버리고 만다.
20XX년 12월 14일 10:40, G빌라 40X호
보글보글... 동태찌개다...
누가 봐도 밥이 잘 넘어갈 상황이 아니기는 하지만...
음식은 참 잘하네... -_-;;;
냠냠... 끄억...
20XX년 12월 14일 12:00, 사무실
거의 환상적인 속도로 고속도로를 날아 점심 직전에 간신히 도착...
점장님이 부른다... 타이밍 죽인다...
“E팀장님”
“네... 넷!”
(흑... 지각한거 들켰나? 한바탕 하려나?)
“오늘 거래처 점심약속 알죠?”
(휴 아니네... 그런데... 앗... 까-_-먹고 있었다)
“눼~~~” ㅜ.ㅜ
(우쒸... 평소 잘 먹지도 않는 아침... 그나마 늦게 먹어서 배부른데... 속 안좋다는 핑계로 안먹으려 했는데...)
20XX년 12월 14일 12:10, S식당
“메뉴 들여가겠습니다.”
이럴수가...
경악이다...
점장님이 미리 주문해 놓은 점심메뉴는...
바로 동태찌개!!!!!!!!!! ㅠ.ㅠ
“어... 오늘 E팀장 어디 아파요?”
“그러게... 영 수저 뜨는 품이 힘이 없네...”
“요즘 감기 심하다던데... 혼자 사는데 조심해야죠.”
남들이야 뭐라든...
말은 못해주지만...
너희들 같으면 이게 맛있겠냐? -_-;;;
역시...
K를 만나면 정말 재수가 좋다. -_-
정말 운수 좋은 날이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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