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벗에게 드리는 고언 |
번호
92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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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성법사 | 정종 | Lv.187 |
2006-04-06
| 조회
1586
|
[첫번째 이야기]
서로 친한 A와 甲이 있습니다.
A는 ○○군 중부읍, 甲은 군북면 태생으로 서로 출신은 다르지만, 그것이 둘이 친한 데 별 영향은 없습니다.
젊은날의 A는 군수고, 甲은 약 10여개의 회사로 이루어진 기업집단 회장이었습니다.
A는 주로 소외계층의 지지로 군수가 되었으므로 좌파적 성향이 강했습니다.
甲의 회사는 당시 재계순위 3위 정도 되는 꽤 큰 기업이었습니다.
주로 군북면에 있지만, 중부읍이나 남면에도 하나씩 있긴 합니다.
甲은 다소 특이하지만, 자신의 의견대로 계열사 사장을 임명한 적이 없습니다. 사원들은 자신들의 사장을 스스로 뽑았고, 그 시스템에 사원들은 특별히 불만이 없습니다.
A는 다소 좌파성향이 강하고, 甲은 보수적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서로의 친분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닙니다.
친구끼리도 생각이 다를 수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배웠고,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해야 한다는 사고가 바로 전체주의니까요.
적어도 그들을 가르쳤던 선생님들은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A와 甲이 서로 친하기는 하지만, 서로 일이 바빠 자주 볼 수도 없습니다.
만나도 A가 군정을 제대로 하는지 아닌지는 웬만하면 입에 올리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A도 甲의 회사에 대해서는 별 말을 하지 않습니다.
가끔 이런 건 어때요?라고 A가 물어보기는 합니다.
그러면 답변은 해 주지만...
혹여나 자기 회사에 득되는 내용이면 입을 닫습니다.
사람인 만큼 불만인 것도 있고 부탁하고 싶은 것도 있지만, 친분 있는 사람에게 부담을 주기가 싫으니까요.
그들은 어릴 적부터, 서로 가깝다는 이유를 들어 상대의 의견을 무시하거나 적절한 논거 없이 꺾으려 해서는 안된다고 배웠고, 그걸 지켜왔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때까지만 해도 A는 중부읍 사람이었고, 甲은 군북면 사람이었으므로, 그들 둘이 친하다고 해서 이를 비난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습니다. A도 군수 임기를 그만두었습니다.
그들은 슬슬 장년이 되어갑니다.
어느날, A가 甲에게 말합니다.
이제 중부읍에서 떠나 군북면에서 살고 싶다.
마침, 甲과 다른 몇몇이 공동투자하였지만 마침 비어 있던 공장 하나가 있었습니다.
甲은 다른 주주들의 동의를 얻어 주었고, 결국 A는 그 회사에 사원들을 모아서 공장가동을 개시했습니다.
세월이 더 흘러 그들도 나이 많은 축에 속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A가 중부면 사람이었다는 것을 이제 다들 잊어버렸고, 甲의 계열사 사장으로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군민들의 대다수가 이제 젊은 사람으로 채워져 과거의 일들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A가 다시 군수에 출마하겠다고 합니다.
甲은 이제 와서 왜 그 힘든 일을 다시 하려고 하느냐고 말렸습니다만, A의 고집을 꺾지는 못했습니다.
甲은 그전에도 그랬듯, 선거를 도와줄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A도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므로 섭섭해하진 않았습니다.
그리고, A는 당선되어 다시 군수가 되었습니다.
세월은 자꾸 흘러갔습니다.
A는 경험자답게 무난하게 군정을 해 나갔고,
A와 甲은 서로의 일에 바빠 공식적인 자리 외에는 거의 만나지조차 못했지만, 세월의 흐름은 사람들의 인식을 변하게 하였고, 사실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떠나, 어느덧 사람들은 A는 당대 최고의 권력과 금력이 뒷받침된 군수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A와 甲을, 장제스와 투의 관계처럼 보는 사람마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사건이 생깁니다.
甲은 다른 사업에도 바빠 ○○군 일에는 사실상 손을 떼고,
가끔 본사에만 들러 사람들을 만나곤 했습니다.
잠깐 스쳐지나가며 안부인사만 한 것을 제외하면,
군수를 만난 기억도 가물가물해질 시기가 됩니다.
어느날, 甲은 군청 게시판을 보게 됩니다.
A가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을 군청 게시판에 정책이라고 올린 것입니다.
무슨 대 테러 대책 비슷한 것이었습니다만, B가 알기에 ○○군은 그런 것이 필요없는 평화로운 곳이었습니다.
게다가 남면에 있는 다른 회사 사장 乙의 경보장치에 관한 의견서가 그 아래 있는 것까지 보게 되었습니다.
甲은 갑자기 저런 것을 보게 되자 정말 엄청나게 놀랐습니다.
아니, 그 사이에 대 테러 태책을 공시하여야 할 정도로,
경보장치를 다들 신경써야 할 정도로,
평화롭던 군 내의 분위기가 악화되었단 말인가?
전화를 할까 생각하다가,
밤도 늦었고, 한참 연락을 않다가 갑자기 연락하기도 서먹서먹하고,
그동안 A가 물어보면 답변을 한 적은 있어도,
자신이 먼저 군정에 관한 것을 사사로이 물어본 적이 단 한차례도 없었다는 것을 인식한 甲...
A에게 게시판에 공개질문을 하면서,
위 경보장치 교체에 관한 의견서가 올라온 시각도 비슷하다는 것을 보고, 혹시 乙이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경보장치가 필요해질 만한 사태가 생겼는지도 물었습니다.
물론 사적으로 사정을 알아보고 했어야 하는데, 잘못한 것이지요.
그러나 이제 사장들은 대부분 부회장과 연락하고 있었고, 자신의 전자수첩에는 일부 원로 사장들과 옛 사장들의 연락처 뿐이었습니다.
게다가, 밤이 늦어 모두 부재중으로 나타나는 사람들...
하지만, 세상 분위기는 옛날 A가 중부읍 주민일 때와 달랐습니다.
甲이 A와 당연히 한편일 테니 저 질문도 변호성 글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심지어는 甲이 실세이고 A는 꼭두각시 군수라는 주장까지 나타납니다.
A는 묵묵부답이고...
乙은 사태가 벌어졌는지에 관한 답변 대신 甲을 A와 동일시하면서 공박합니다.
너희 회사 경보장치는 상급이면서 왜 우리는 경보장치를 못 다느냐고 합니다.
甲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甲의 계열사 중 경보장치가 달려 있는 유일한 곳은 ○○군이 평화롭지 못하던 먼 옛날에 달았던 본사 뿐이고,
평화로운 군내 분위기상 나머지 계열사에는 전혀 경보장치를 달지 않았기도 하거니와,
그보다도, 그냥 경보장치야 달고 싶으면 알아서 달면 되는 것이고,
거기서 甲의 회사 경보장치 이야기가 나올 이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甲은 그제서야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제서야 군청 게시판을 모조리 뒤진 甲...
(어느 날부터인가, 군청 게시판은 시스템 장애로 검색기능이 제한적으로만 기능하고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경보장치 등급의 제한을 가져오게 된 바로 그 정책공지를 찾아냅니다.
甲이 없는 동안, A의 다른 정책 때문에 각 회사 경보장치의 등급이 제한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알아본 결과,
○○군에는 참고 쌓여 내재된 폭력인자가 존재하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널리 알려질 만한 특별한 사태는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甲의 놀라움은 단순히 기우에 불과했고,
입을 잘못 놀려 황당한 오해를 살 수도 있다는 것을 배운 甲이었습니다.
시간이 또 흐릅니다.
누군가가 오셔서 군수님께 조언해 달라는 말을 하십니다.
그전까지 묻지 않았는데 군수에게 의견을 말한 적이 없는 甲으로서는,
옛날 같으면 당연히 정중히 거절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태는 A군수 혼자 만든 일이 아니고,
甲이 노파심에 공개질의를 함으로써 커져버린 탓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에, 정말 주제넘은 일이기는 하나, 벌여 놓은 일에 관하여 결자해지의 의미에서, 甲은 A군수에게 공개적으로 제언을 드리게 됩니다.
[이번 사태가 해결이 되지 않으면 甲의 회사에 대한 군민들의 적개심이 높아져서, 누군가가 甲의 본사를 테러할지도 모른다는 말씀을 전해 주신 분도 있지만, 甲의 회사와 A의 군청을 분별하지 못할 그런 분은 아직까지는 ○○군에는 없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이제 甲으로서는 ○○군내의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많기 때문에, 그런 위험이 있다고 해서 이런 글을 올리고, 그런 위험이 없다고 해서 이런 글을 올리지 않을 것은 아닙니다.]
그전의 모든 조언은 개인적인 대화로 이루어졌고, 이러한 조언도 개인적으로 드림이 마땅하나, 진짜 군수는 甲이 아니냐는 어처구니없는 오해까지 나도는 작금의 상황에 이르러서는, 개인적인 대화로 말씀을 드림은 더욱 적절하지 아니하게 되어 버렸습니다.
개인적인 대화로 A군수가 甲의 의견을 받아들이면,
거봐 내말이 맞잖아...
라는 오해는 더 생명력을 가지고 퍼져나갈 것입니다.
이에, 공개적으로 모두가 이해하실 만한 이야기 한 편을 적는 것으로,
요청받은 조언에 갈음할까 합니다.
[두번째 이야기]
킬트(kilt)라는 것을 다들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흔히 스코틀랜드의 전통 의상으로 알고 있는 격자무늬 치마지요.
아직 스코틀랜드 군대 예복으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스코틀랜드인이 항상 격자 무늬 치마를 입어왔다고 생각하고, 이는 스코틀랜드인의 전통이자 자존심이며 민족 의식이라고 생각하며, 심지어는 스코틀랜드인들 자신조차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러한 믿음은, 월터 스코트 경이 1805년 한 시론에서, 킬트의 역사가 멀리 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고 주장한 데 기인합니다.
워낙 유명한 사람이 그렇게 이야기해 버리니 다들 그냥 믿어 버린 것이지요.
그런데... 과연 그럴까요?
그들은 격자무늬든 다른 무늬든 전통적으로 치마를 입어 온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18세기에 이르기까지는 말이지요. 그전에 격자 무늬의 숄을 걸쳤다는 기록은 있습니다만, 치마를 입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단지 그전에 그들은, 무릎까지 내려오는 격자 무늬 셔츠를 입었지요.
지금 식으로 하면 원피스겠네요.
그리고, 그들은 그 원피스 위에 벨트를 맸습니다. 언뜻 보면 치마 같지요.
우스운 것은, 그 킬트가 1727년에 토머스 로린슨이라는 잉글랜드인이 고안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잉글랜드인과 스코틀랜드인은 오랜 동안 숙적이었고, 두 나라가 합쳐진 것은 1707년입니다. 적국인이 만든 의상이 전통 의상이 되어버린 것이네요.
처음에, 위 킬트는 단순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싸다는 이유로 유행했지만, 지금같은 명성 있는 옷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지금으로 치면 청바지 비슷한 것이었죠.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은 바지를 입고 다녔습니다.
킬트에 비해 바지를 입고 다니는 것이 편하기도 하거니와, 보온효과도 더 좋다는 것은 그 자체로 당연합니다.
그럼 어쩌다가, 더 편하지도 않고 의복으로서의 보온효과도 떨어지는 킬트가 전통 의상이 되어버렸을까요?
바로 킬트가 나온 지 1-8년(금칙어군요 -_-)만인 1745년, 영국 의회가 킬트를 금지했기 때문입니다.
치마는 남자들이 입기에는 적당하지 않고, 더구나 스코틀랜드인들만 입는다는 것은 통합 왕국의 융화를 해친다는 생각을 한 것이죠.
결과는?
킬트 착용 금지령이 공포되고, 킬트를 입는 것이 금지되자마자 사람들은 모두 킬트를 입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보잘것없었던 킬트가, 단기간에 스코틀랜드인들에게 경외의 대상이자 민족 의상이 되어버렸죠.
킬트가 스코틀랜드의 보물이 되면서부터, 스코틀랜드의 주요 씨족들은 자기들만의 독특한 격자 무늬 치마가 예전부터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어떤 무늬를 누가 예전부터 입어 왔는가, 그리고 어느 씨족이 특정 무늬를 입을 수 있는 권리가 있는가에 관하여, 이전에는 없었던, 아니 있을 수도 없었던 논쟁이 갑자기 벌어지는 코미디같은 현상이 일어납니다.
지금까지 단 한번도, 의견을 구하지도 않았는데 먼저 이래라 저래라 말씀드린 적이 없고, 군정에 전혀 관여한 바도 없고 앞으로도 관여할 상황은 없겠지만, 주제넘은 것임을 알면서도, 甲은 A군수님께 감히 말씀드립니다.
아직까지 다수의 사람이 별로 신경쓰지 않는 것은 구태여 법을 제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공권력의 규제가 있게 되면, 그전까지 그런 것이 있었는지 신경쓰지도 않던 사람들이 갑자기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따라서, 그 자체로는 효과가 예상될 지 모르는 정책이라 하더라도 이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그 관심없던 사람들의 관여로 인한 부(負)의 효과까지 상쇄할 수 있어야 비로소 시행이 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하셔야 합니다.
아직 일어나지 아니한 위험에 관한 예방책, 좋습니다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위험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고...
가급적 공권력을 사용하지 않고도 그 위험이 일어나지 않으면 더욱 좋은 것입니다.
군수님의 재고를 머리숙여 부탁드립니다.
甲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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